17년 전 남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김 여사는 고향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재혼을 했습니다. 함께 살아 보니 재혼한 남편은 지독한 구두쇠에다 조그만 일에도 화를 버럭버럭 내어 도무지 정이 가질 않았습니다. 잉꼬부부처럼 살진 못할망정 매일 마주 대하기만 하면 사사건건 싸우니 이젠 지쳤다고 했습니다.“아무리 참고 또 참고 살아 보려고 해도 도대체 좋은 점이 한 가지도 없으니 이쯤 그만 끝내야 하나 봐요.”재혼한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 바보 같고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 어떤 여자도 지금의 남편과는 맞추어 살 수 없을 거라면서 절망 가운데 신음했습니다. 재혼을 실패로 만든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김 여사와 몇 번의 상담끝에 남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이해하는 만큼 사랑한다
7남매의 장남인 남편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또한 그 충격으로 쓰러지시고 시름시름 앓아 누우셨지요. 너무나 엄청난 일을 갑자기 당한지라 슬픔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사치였어요. 하루하루 동생들과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온통 그 걱정뿐이었지요.돌아가신 아버지가 모내기 해 놓은 논에 가뭄이 들어, 벼가 바싹바싹 말라가는 모습을 보니 어린 마음도 애간장이 탔습니다. 물이 차 있는 윗논에서 물고를 터서 조금씩 흘러 내려오게 하고 있는데 윗논 주인아저씨가 소리를 치면서 달려왔습니다. 눈을 부릅뜨고는 물꼬를 단단히 삽으로 막으면서 물 한 바가지도 내려줄 수 없다고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았어요. 어린 나이에 무섭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어찌할 수 없어 울분을 참으며 소리 없는 눈물만 삼켰습니다.지금도 무슨 말만 하려면 긴장이 되고 입이 마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 싸우는 사람처럼 소리를 먼저 지르게 된다고 했습니다.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지게를 지고 산으로 향하는데 학교 앞을 지나칠 때면 등교하는 친구들의 눈을 피해 종종 걸음으로 숨어서 한참을 멍하니 보곤 했지요.
한짐 나무를 지고 내려왔건만 나무를 사주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쌀독에 내일 먹을 쌀이 떨어진 것을 알고서는 이웃동네까지 쌀을 꾸러 가는 소년 가장의 마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 가난에서 벗어날까 하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앓아 누운 어머니의 병간호도 마음을 짓누르는 큰 근심으로 다가왔습니다. 유명하다는 점쟁이까지 찾아가서 굿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답니다. 꿈 많았던 한 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의 파고가 너무나 깊고 높았던 것입니다.남편의 성장 시기 이야기를 들은 김 여사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일주일 전의 말투와는 달리 희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남편도 눈물을 주루룩 흘렸고 듣는 자신도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과거를 듣고 나니 남편에 대해 훨씬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배우자를 안 만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한 만큼 수용하게 되는가 봅니다. 김 여사 역시 자신의 성장 시기와 지난날의 아픈 삶을 이야기하면서 처음으로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품는 것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지난날의 경험을 가진 저장창고를 가슴 속에 가지고 있지요. 부부가 서로 다른 경험을 쌓아오며 살아가므로 그 저장고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배우자의 저장고에 있는 아픈 추억은 감싸 주고 어루만져 주며, 들추기 싫은 과거는 함께 숨겨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도 배우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비난하지 않고 같은 편이 되어 주고 위로하고 품어 줄 때 상처가 치유됩니다.닭이 달걀을 품은 지 21일이 지나면 병아리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을 때 그냥 품는 것이 아니라 그 달걀을 품고 이리저리 돌린다고 하네요. 어미의 체온이 골고루 전달되라고 정성을 기울인 게지요. 혼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사랑을 퍼붓는 거지요. 어미 닭이 따듯한 품으로 품을 때 딱딱한 달걀 껍데기가 깨지면서 병아리로 변합니다.사랑의 두 날개로 품으면 딱딱한 것도 부드러워지죠. 사랑은 품는 거예요. 수용하는 겁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부분까지도‘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하고 한 폭 접어서 봐 주세요.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한 배우자일수록 품어 보세요. 품어 주는 사랑만이 그의 두꺼운 껍데기를 깨뜨릴 겁니다.
우리는 누구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내 마음에 맞게 하기 위해 서로를 조종하지요. 잔소리가 늘어나고 주문이 많아지는 것은 상대를 거절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나 마찬가지지요.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총공격을 해도 요지부동으로 변화가 없으면 온갖 비난을 해서라도 배우자를 뜯어고치고 싶어 합니다.
단지 가족이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의 폭력을 쓰는 거지요.애완동물이나 로봇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군가에게 지시받기를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또한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배우자로부터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듭니다.부부 사이의 거절감은 마음의 상처가 되어 감정의 골을 만듭니다. ‘당신이 내가 원하는 대로 변하면 그때 받아 줄게요.’가 아닙니다. 수용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에게 변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지금 있는(here and now)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심판하거나 변화시키려 들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있는 일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집니다. 지금 부부 사이에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나요?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과 아픔으로 마지막 붙잡고 있는 끈을 놓고 싶은 유혹이 드십니까?배신감과 거절감으로 잠 못 이루는 어두운 밤에도 절대로 백기를 들지 마세요.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렵고 힘든 시간이라면 배우자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만나면 누구나 주기보다 받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부부가 동시에 힘든 시기를 만나면 관계가 악화될 수 있어요.이때는 무조건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일단 마음속으로 외쳐보세요.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사람이건 당신 자체로 무조건 사랑하기로 선택했노라고,
우리는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이라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나를 위해 당신을 품고 수용하겠노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들어주고 품어 주면 반드시 회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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