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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참 아름다운 목욕.

by 은빛지붕 2024. 3. 19.

 

 

김이 자욱한 것부터 신비한 안도감을 준다. 가만히 물속에 몸을 담그노라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전혀 옷을 걸치지 않고 함께 커다란 욕조에 들어간다는 것이 동료 의식과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겨울 산행 끝에 닿는 온천욕은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 뻐근한 다리가 부드러워지고 가슴이 시원하

머리가 개운해진다. 우리 대중 목욕탕의 그림이다.


그런 대중온천탕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한 장면이 눈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나 삼촌으로 보이는 40대와 그가 안고 있는 열두어 살 된 소년이었다.

소년의 다리가 자연스럽지 않다.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지체 부자유 자다.

어른은 그를 안고 탕 속에서 이리저리 다닌다. 마치 걸음마 연습시키듯 움직인다.

서지도 못하는 아이를 뒤로 안은 그의 얼굴은 체념이 아닌 달관의 빛이다.

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품에 안겨 이 팔 저 팔,

이 다리 저 다리 움직이려 애쓰는 소년의 신체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단지 눈과 입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은 팔 대신 입을 움직였고 다리보다는 눈을 옮기는

 고작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입을 벌려 웃었다. 벙그레, 하하 웃어댔다. 눈도 마찬가지로 번쩍

크게 뜨며 입을 따라 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웃는 것뿐이었다. 웃음으로 말하고,

렇게 걷고, 웃음으로 운다. 그가 세상을 향하여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래 웃지 않으면

어찌 살아가랴. 소년의 웃음을 받아 주는 어른은 그 아버지뿐이다. 아무도 소년의 웃음을 이해하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울음보다도 슬픈 소년의 웃음을 기꺼이 미소로 받는다.

참 슬프지만 아름다운 목욕이었다.


그둘이 나가고 다른 둘이 들어왔다. 70세가 훨씬 넘은 노인분과 30대의 젊은이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몸이 깡마르고 거의 기력이 없는 노인을 부축하여 아들이 탕으로 들어온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곧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은 아픔에 아들의 입이 닫혔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듯 물만 첨벙인다.얼마나 지났을까?

한쪽 구석 바닥에 아버지는 편히 누웠고 아들은 이리저리 애무하듯 때를 밀어준다. 

몸을 맡긴 아버지의 입가엔 편안한 웃음이 번진다. 아들의 온몸엔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만면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감돈다. 한없이 주기만 했던 아버지인지라 받기밖에 할 수 없는 처지에 잠시

쑥스러워 했을지 모르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자세다. 거의 기력이 쇠한 아버지,

잘 모르긴 해도 오로지 아들만을 위해 평생 지내오시다 몹쓸 병에 걸려 이렇게 힘없이 누워계실 터,

때미는 손에 정성이 아니 들 수 없다. 참 아름다운 목욕이었다.


우리는 적신(赤身)으로 왔다 적신으로 간다.

적신엔 직위도 학력도 빈부도 나타나지 않는다.

차이가 날 것도, 낼 이유도 없다. 다투어야 할 필요가 없다. 모두 같다. 

돈도 권력도 명성도 결국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적신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가 진실 앞에서 깨끗하고 떳떳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오셨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