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다니는 어린 학생들에게 들길과 산길은‘놀이’요‘
유혹’이었다. 반시간 남짓이면 집에 당도할 길을 한 시간이 넘어서야, 어떤 때는 해가 서산에
기울어질 때쯤에야 집에 도착한다. 물론 도보 통학이었다. 특히 방학을 며칠 앞둔 귀가 길은
무덥고 지치며 심심했다. 길가 무밭 장다리를 꺾어 먹으면 속이 야릿하다가도 토마토 횡재에
혀를 구슬리고 배를 채우는 하교 길은 온통‘자연 게임 소프트 프로그램’이었다.달리고 숨고,
가위바위보 나뭇잎 따기 등에 정신 팔다가 “후두둑”빗방울 소리에 냅다 뛰어간다.
한때 소나기를 피해 모두 모인곳은 빈 보릿단을 후벼서 생긴 틈이다.
먹구름이 칠흑 같은 어둠을 깔고 번개가 하늘을 두 쪽 내며 천둥이 머리 위에서 내리치면
꼼짝 없이 주인 몰래 장다리와 토마토 먹은 죄의 보응이 내게 내리는 것 같았다.게다가 슬슬
저도 모르게 한 마디씩 나오는 이야기는‘죽음’에 관한 주제였다. 보릿단 속은‘공포의 도가니’
로 바뀐다. 소나기에 젖은 옷과 무서운 이야기 때문에 온몸을 벌벌 떨며‘공포’에 갇힌다.
오싹해져서 아랫배를 움켜쥐다가 끝내 참지 못할 것 같은데 다행히 비가 그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밖으로 뛰쳐나와 보릿단을 향해 오줌을 갈겨댄다.
그때, 먹구름을 헤치고 흰 구름이 솟아나오며, 파란색이 드러나는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시원했던지. 얼마나 편안하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즐거운‘안식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공포는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전쟁 공포, 테러 공포, 홍수 공포,
질병 공포 등 모두 죽기 싫어서, 죽음 때문이다.사실 죽음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최대의 공포는 죽음이다. 뇌졸중으로 혼절하여 돌아가신 이웃집 할아버지, 병원에서 말기
간암으로 진단받고 결국 숨을 거둔 친척 어른, 두 아이를 안고 잠자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일어나지 못한 젊은 엄마, 잠자리에 든 40대 가장의 돌연사, 끔찍한 교통사고 등
얼마나 오싹한 두려움인가. 이 여름에 그런 공포를 다룬 영화를 찾는 관객은 어떤 이유인가?
납량특집물이나 괴기물을 보면서 머리칼을 쭈뼛 세워 춥다고 더위를 식히는 이유는 무얼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죽음만큼 완벽한 쉼은 없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의 아픔과 괴로움과 오열과 한탄은 산 사람들의 것이다.
죽은 자는 말 그대로 시체이다. 고통도 못 느낀다. 무서움도 모른다. 스트레스도 없다.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공포를 모른다. 거듭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처럼
완벽한 잠은 없다. 죽음같이 완전한‘안식’은 없다. 살아 있는 자만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공포를 느낀다. 그렇다고 완전한‘안식’을 위하여 죽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성경이 역설을 푸는
답을 준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사랑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그 죽음은 사람이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해서 죽은, 대속(代贖)한 구원의 사랑이다.
죽음이 있게 한 죄와 죄의 형벌을 지고 예수가 우리 사람 대신 돌아가신 것이다.
사랑 때문이었고 그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 사도 바울이“…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받아들여 사랑을 깨달은 신앙인으로,
불안하게 하고 공포를 자아내고 쉼을 없게 하는 죄에 붙들린 자신을 날마다 죽인다는 영적인
경험의 고백이다. 이런 고백을 하는 신앙인에게‘안식’은 완벽해진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다.
휴양이나 휴가로 채워질 수 없는‘안식’의 갈망이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삶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참된 쉼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진정한‘안식’을 우리에게 선물하려고 예수는 최고의 사랑의 선택인 죽음을 겪으셨다.
우리의 죽음을 가져가셨다. 공포를 떠안으셨다. 사랑이다.
그 사랑 안에 온전한 안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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