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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은혜의 빛깔.

by 은빛지붕 2024. 3. 24.

 

 

 

 

세상이 온통 빛으로 가득하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새 잎새에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마다 빛이 눈부시다.

빠알간 꽃잎에서 반사된 햇살이 들풀의 밑둥까지 밝힌다.

쪼르륵 날아오른 산새가 지나는 하늘이 파란빛으로 투명하다. 못 미치는 데 없이 골고루 비춘다.
빛바랜 사진 속의 네 살 난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한 부인이 눈물로 사연을 꺼낸다.

유태인 학살이 극에 달할 무렵 부인은 여자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독일 병사가 그 아이엄마를 붙잡았다.“ 엄마아…”휙 돌아보며 병사가“당신 딸이오?”

그 순간 아이엄마가 부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니요, 바로 이분 딸이에요.”
부인은 사태를 짐작하고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아이가 큰소리로 울었지만 군인의 손에 붙잡힌

진짜 아이엄마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행여 의심을 살까봐…, 그후 아이엄마는 어찌됐는지,

이 아이가 그렇게 얻은 내 딸이지요.”사진을 든 노부인의 손이 떨렸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다 자란

사진 속 그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여기예요, 엄마 여기….”
 생명을 던지며 사랑한 어머니, 생명을 있게 한 부모님, 우리는 그 이름을‘은혜’라고 부른다.


영특한 학생이 중학교를 맨손으로 다녔다. 가난도 가난이거니와 신앙 문제로 집안에서 내놓았나 보다.

오갈 데 없는 학생에게 기숙사비가 없는 건 당연지사, 영어 선생님은 그 학생의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얘, 내가 조그만 방을 구해놨으니 그리 가라, … 밥은 나랑 같이 먹구.”아, 따뜻한 방에서

선생님이 손수 지어 주신 정성어린 밥을 먹으며 여섯 달이었지만 학생은 평생동안 살아갈 힘을 모두

가슴에 넣었다. 그 학생이 고등학교, 대학을 가고 결혼까지 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그 절뚝거리며 밥을

지으시던 여선생님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은혜지, 은혜야 은혜밖에 없어.”그때 얻은 따스한 가슴 때문에

그는 좋은 머리로 다른 많은 길을 마다하고, 목사가 되었다.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 최적의 자리를 찾았다.
몰래 급식 창고의 우유가루를 먹다가“켁, 케엑”, 들켜버린 초등학생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교무실로 데리고

간 선생님,“ 이놈들아 그렇게 먹다 목 막히면 어쩌려고. 자, 물부터 마셔라.”“서, 선생니임…”

울렁대던 가슴과 시큰거리는 코에 담은‘은혜.’치명적인 잘못을 용서하신 선생님, 무지를 깨우쳐 삶

지혜를 주신 선생님, 막연한 길을 훤히 꿰뚫어 주신 선생님, 그 이름을 우리는‘은혜’라 부른다.


빵을 훔친 죄로 19년 중노동을 선고받은 장발장, 점점 사나운 죄수가 되어가다 출소했다.

전과자가 발붙일 곳은 예나 지금이나 없긴 마찬가지, 그러다 어느 날 신부의 집에 묵는다.

그날 밤, 장발장은 은잔을 훔쳐서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이 은잔은 제가 선물로 준 겁니다.”
모든 인간의 복수 본능을 넘어선 신부의 행동, 그 용서의 위력에 장발장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딱딱하게 굳었던 장발장의 영혼이 눈 녹듯 풀어지고 새 순이 돋아 푸르른 삶을 이어간다.

대를‘은혜’의 상징물로 간직한 채 정직과 봉사의 나날이다.

토르 위고의 소설‘레미제라블’의 줄거리이다. 상상할 수 없는 용서, 다함 없는 사랑, 갚을 길 없는 자비,

우리는 그 이름을‘은혜’라 부른다. 받을 자격도 없고, 값을 치를 수도 없는 이에게 베풀어진 진수성찬,

거대한 선물이‘은혜의 빛깔’이다. 베푸는 쪽의 부담으로 조건없이 거저오는 것,‘ 은혜’이다.

기쁨과 즐거움의 색, 쾌활과 아름다움의 빛, 매력이 넘쳐흐르는 눈부심이 은혜의 빛깔이다.

과분한 것을 받아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빛이다. 잃어버렸던 지갑이 우편물로 고스란히 돌아올 때,

사고 비행기 탑승자 명단에 그 이름이 잘못 올라 있을 때, 패색이 짙다가 역전승의 낭보를 들었을 

등등의 경험일까? 결국 생명을 받는다. 받을 가치도 없고, 조건도 없는데 거저 얻는다.

기독교는‘구원’이라고 한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과분하고 감사하고 즐겁고 아름답다.

은혜의 빛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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