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간의 만남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포츠와 경재계에서의 모기업간의 치열한 경쟁,
연예계와 정계 및 다양한 구도에서의 치열한 라이벌 경쟁은 때로는 만은 이들의 지탄과 함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라이벌(rival)이라는 영어 단어는 강을 의미하는 영어의 리버(river)와
뿌리가 같다. 라틴어 리발에서 나온 것으로‘강가의 주민’이 원래 뜻이다.
강가에 사는 주민이지만 반대쪽 강가에 사는 주민을 의미한다.
어원을 통해 보면 같은 강물이 삶의 터전이기에 사이가 좋아야 하지만 고기를 잡고 논밭에
물을 대면서 서로 경쟁하고 충돌하며 산 듯하다. 지금의 라이벌이라는 말에는 그런 경쟁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강물이 마르거나 오염되면 다같이 죽게 되므로 그들은 경쟁자이면서도
공동운명체이기도 했다(야후의 지식 검색 내용 참조).
미국과 테러는 라이벌일까? 경쟁한다는 면에서는 그럴 것 같기도 하다. 미국과 러시아는
라이벌 관계였다. 미국이 라이벌 전에서 승리하고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누가 미국에 대항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강대국이 아니라 테러가 미국의 주요 상대가 되고
말았다.테러와 미국의 싸움은 만만치 않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러간의 라이벌 전보다
더 큰 긴장과 현실적 위협을 생활에서 보여 주고 있다. 이전의 라이벌 전에서는 줄서기를
잘 하면 됐는데 지금은 줄서기도 용이하지 않다. 테러는 군인만을 노리지 않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행해지고 현대의 테러는 우리에게 테러라는 말 그대로
공포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은 테러에 대해 가시적인 우위를 지키면서도 분명한 우위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제거하려고 한다. 공동운명체로 인정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로트 테오도르 욀러가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인가>에서 언급한
파괴적인 라이벌 의식이다.미국과 테러주의자의 만남에는 비극이 예견된다. 죽음이 느껴진다.
여기에 대한 답은 없는가? 공동운명체 의식을 공유할 가능성은 없는가?
뤽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부르는 무산소 잠수의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두 사람의 라이벌을 그린다.
그리고 결국 무리한 잠수를 한 사람은 바다에서 죽는다. 바다를 사랑한 사람이 바다에 갇혀 숨을
멈추고 만다. 미국과 테러주의자들은 이 지구에서 살기 위해서 싸운다. 그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게도 살려고 싸우는 지구에서, 싸우다가 죽어버리고 만다. 이제 지구촌 곳곳에서 들여오는 테러
소식에 무감각해지면서도 여전히 두렵다.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솔직히 답이 없다. 답답하다. 라이벌이 될 뻔했지만 여인에 대한 사랑보다 더한 사랑을 나눈
다윗과 요나단이 오늘 이 시간 그리운 이유가 무엇일까?
제자들간의 라이벌 의식을 섬김으로 변화시킨 예수님이 그리운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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