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아침을 낳는 태(胎)이다. 새벽녘이 대지를 둘러 싼 모습일랑 자궁 속의 아이를 두른 양막과 같다. 그 안을 채운 양수처럼 새벽이슬은 투명함뿐 아니라 깨끗함에 어느 것도 비할 수 없다.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향내를 뒤로하고 밤꽃 내음에 잠긴 초여름은 청순한 새벽 공기를 낸다. 풀잎에 반짝 이슬이 맺힌다. 새벽이슬 한 방울, 처음 햇살에 들켜서 수줍어하는 영롱함이란 황홀하기까지 하다. 투명해서 그렇다. 깨끗해서 그렇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 그들이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들이 나서면 만사가 풀어진다. 지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승리와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이다. 성경의 시편 기자의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편 110편 3절).
이같이 승리를 만들어 내는 젊음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에 있는걸까?“ 끓는 피”와 탄력있는 근육에 있나? 아니면“이상(理想)의 꽃”에 있을까? 이런 젊음의 고동치는 심장과 끓는 피와 날카로운 이상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새벽이슬 같은 청년”의 힘은 순결에 있다. 눈부시도록 투명하고 아름다운 맑음에 있다. 진실이 내는 깨끗함과 청초함에 있다. 이슬처럼 무구가 빛나는 데에 힘이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서정 작가 알퐁스 도데는 아버지의 가업 파산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위해 노동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노동의 현장과 암담한 현실이 그를 시궁창에 빠뜨릴 수 있었으나, 그의 젊음은 별처럼 맑게 빛났다. 그의 대표작 <별>은 시공간을 잇는 아름다운 한 점이 되어 천진한 스테파네트에게로, 순수한 목동에게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목동이 스테파네트에게 별들의 결혼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려는 순간 향긋하고 보드라운 것이 어깨에 위에 가볍게 내려앉는 것을 느낀다. 리본과 레이스, 머리카락의 살랑거림과 함께 목동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어버린 아가씨의 머리 때문이다. <별>은 이렇게 끝난다.
“아가씨는 아침이 밝아오면서 하늘의 별빛이 빛을 잃고 사라질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지만 오로지 아름다운 생각만 하게해준 이 맑은 밤의 경건한 보호를 받으며 잠자는 아가씨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주위의 수많은 별들은 유순한 양떼처럼 소리 없는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별들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수가 아름답다. 순결이 힘이다. 신록이 뚝뚝 떨어지는 유월,‘새벽이슬 같은 젊음’의 빛이 눈부시고 초록의 진액처럼 힘이 솟는다. 성경 속의 요셉은 유월의 순결한 청년이었다. 모함과 유혹의 깊은 구렁 속에서도 새벽이슬의 빛을 잃지 않았다. 그의 눈썹에 아롱진 눈물은 이슬처럼 그의 순결의 힘을 빛낼 뿐이었다. 다니엘도 그의 깨끗한 영혼에 그 어떤 티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오직 하늘로 열린 뜻을 굽히지 않고 순결을 이어나갔다. “ 새벽이슬같은 청년”이었다.
인터넷의 음란 사이트나 마약의 덫이 새벽이슬 같은 젊음을 걸고 넘어뜨릴 수 없다. 부절제의 독이나 악습의 티가 그들을 오염시키지 못한다. 새벽이슬 같은 젊음에겐 더러움의 원천인 이기심이 씻겼다. 경쟁과 투쟁, 전쟁 문제도 그들의 마음이면 풀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