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에 갈급한 시대이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는 생존 환경, 끝없이 밀려오는 세속의 물결과 욕망의 파고, 넘치는 스트레스와 피로감,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공포 등, 이런저런 삶의 중압감에 짓눌리다 보면 향방을 잃고 표류하기가 쉬운 세상이다.더욱 근본적인 부담은 인간의 내면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죄악과 그로 인한 절망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류에게는 감출 수 없는 공통의 갈망과 궁극적 염원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그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것이 바로 궁극적 힐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구원과 또 그 방법은 무엇인가? 성경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구원의 생수를 길어 올려 보자.
한밤중에 울린 전화벨 소리에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라며 오래전 침례를 받은 K를 찾았다. 다른 교회로 전근을 왔고 또 그 사이에 몇 년이 지난 후인 시간, 그는 내게 잊혀진 성도였는데…. 전화벨 소리는 시공을 날아가 그를 내게 다시 데려왔다. 이렇게 시작된 이 일은 내게 구원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대검을 들고 나타난 그는 그걸 거칠게 내 앞에 놓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보았지만 왠지 무섭지 않았던 그, 떠난 사랑을 찾아서 살인으로 끝을 내야겠다고 무작정 나선 그! 난 조용히 사무실 문을 안에서 잠그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7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이어진 만남, 성경 공부 그리고 드디어 침례! 사랑을 잃어버린 그, 배신으로 바뀐 그의 사랑. 원망과 좌절이 죽음이라는 극단으로 그를 몰고 왔지만 그게 인연이 되어서 성경을 공부하고 드디어는 침례를 받았다. 그러니 이런 전화를 받기까지 그는 내 목회 인생에서 훈장과 같은 존재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한 살인 미수자(?)라 당연히 내 설교 무용담(?)의 주인공이었으니까.그런데 그가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는단다.
어? 아! 내가 한일은 무엇인가? 내가 집행한 구원의 의식은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벌써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사건은 아직도 내게 마음의 짐이다. 구원받는 것이란 무엇인가? 어느 종파의 가르침에 참여하여 그 집단의 의식에 동참하는 것이 구원인가? 이것만으로는 분명히 그 의미를 다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질문은 나를 고통과 희열의 길들로 번갈아 가며 이끌고 있다. 성경을 읽고 깨닫는 기쁨 그리고 그곳에 미치지 못하여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고통! 성경 기자 누가는 사마리아인 나병 환자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 하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누가복음 17장 19절).10명의 병이 치유되자 다 돌아갔지만 오직 그 10명 중 1명인 사마리아인만이 돌아와 감사했다. 그리고 들은 선언의 말씀이다. 구원이라는 선언은 그렇게 그에게 다가왔다. 불치의 병이 고쳐지는 것은 질병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깨닫는 큰 기쁨이지만, 여전히 아픈 사람 앞에서 무기력하게 돌아서는 자신을 보는 일은 너무도 큰 아픔이다.
구원은 내게 문둥병 같은 불편함이 있어도 치유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구원은 내게 기적 같은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믿는 신념이다. 내가 못한다 해도 그 일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바울은 떨며 놀람 가운데 묻는 간수에게 말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 간수의 물음은 이것이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 말의 상황을 알고 해석한다면“선생님들은 누구이기에 억울하게 들어와 있다가 탈출의 기회를 보았는데도 거기에 남아 계십니까? 저도 그런 당당함으로 살 방법이 무엇인가요?”일 것이다.구원은 바울처럼 자신을 온전히 말씀에 맡겼기에 행동으로 말하는 것이다. 옥터가 흔들리고 차꼬가 풀려도 나가지 않고 찬미한 그 행동으로 한 말이다. 미래에 나타나든 현재에 나타나든, 기적이 일어나고 내게 큰 이득이 있어도 말씀에 의지하여 내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아직도 아프다.
구원은 내게 무엇인가?
요한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장 1절)라고 외쳤다. 바다! 밧모의 삶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애물,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자리를 가리고 버틴 장벽. 바로 그 바다..구원은 바로 그런 바다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바랐던 희망을 성취하고, 갈망했던 그리움이 채워지는 현장이다.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그날이 오늘은 아님을 오히려 감사하며…. 아파도 참고, 부족해도 살아 보자. 그날이 오늘이 아니니….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하루를 지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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