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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둥지 증후군

by 은빛지붕 2024. 2. 4.

 

 

 

 

 

 새들은 알을 낳기 전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그리고 둥지 속에서 부화시킨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먹이를 구해 오는 것은 물론, 깃털이 나서 날갯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경계 태세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부분 동물들은 그와 같은 종족 보존 기능이 본능적이다. 어미 새는 새끼들이 성숙하여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부모 역할을 다 하지만, 어미 새의 도움을 받던 새끼 새들은 둥지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어미 새가 있는 둥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미 새도 새끼들이 둥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걱정하거나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어미 새 입장에서 보면 둥지는 알을 낳기 전 상태로 텅 비어 있다. 사람들도 자녀가 태어나면 열심히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면서 키워 나간다. 또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느덧 그 자녀들도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버린다.
 자녀가 둘 이상이더라도 막내가 집을 떠나면 결국 신혼 초처럼 다시 부부 둘만 남는 시기가 돌아온다. 이를 새들 경우와 비교한다면 부부는“텅 비어있는 둥지(empty nest:빈 둥지)”를 경험한 셈이다. 빈 둥지 시기를 맞이하는 순간 고등동물인 사람들은 새들과 달리 심리적인 변화를 심하게 경험한다. 하나는 자녀와 관계가 달라지면서 부모로서 겪는 심리적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들을 둥지 밖으로 떠나보낸 이후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이나 위기의 경험과 함께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서 문제를 빈 둥지 증후군(syndrome)이라고 표현한다.


부모 역할이 변해야 한다
 먼저 자녀와의 관계를 보자. 대다수 한국인들은 최소한 20년 정도 부모 역할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젖을 떼자마자 자녀의 두뇌 개발을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하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정신 없이 부모 역할을 한다. 천일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자녀와 승강이하며 희생하고 살아간다.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켰을 때 부모 역할을 그런 대로 잘 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산다. 그런데 그동안 저축할 겨를도 없이 경제적으로 투자하면서 또 몸과 마음을 바치면서 자녀 뒷바라지를 해 오던 부모는 대학에 들어간 자녀가 객지로 떠나버릴 때 어떤 심정이겠는가? 텅빈 집안은 갑자기 부모역할과 삶의 구심점을 한순간에 빼앗아 간 것 같다.

 우리보다도 더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서구인들도 최소한 자녀가 고등
학교를 졸업한 후 빈 둥지 시기를 예견하지만 일부는 상당히 힘들어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더 힘들어 할 것은 뻔하다. 오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막내가 대학간다고 객지로 떠나자 처음 한 달을 눈물로 보냈다는 주부의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자녀를 잊을 수 없어서 매일 전화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자녀를 통제하는 것이 더 이상 뜻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속이 상했다고 하소연 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라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너무 독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면서 서운해 한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이면서, 자녀들이 꾸준히 자신에게 의존하기를 바라는 부모일수록 서운한 감정이 거세다.
 자녀가 밖에 나가서 사회 생활을 떳떳하게 잘 할 수 있게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부모일지라도 집을 떠난 자녀가 혼자서 무슨 일이든지 현명하게 처신하고 살아갈까 하는 걱정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자녀가 떠날 때 부모의 불안은 더욱 심하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 나이가 60세를 넘어도‘밖에 나가서 차 조심해라’고 말할 정도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대학에 간 자녀가 방학에도 집에 와 함께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자녀 생각은 부모와 다른 경우가 많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등 부모 곁에 잠시 머물고 떠나버린다. 부모는 더 이상 자녀를 이끌고 다니는 역할도 못하고 자녀가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속이 상하겠지만, 자녀 입장도 생각해 주어야 한다. 그들도 자유와 사적인 생활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한시라도 심리적으로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게 그들 생각이다.

 자녀가 결혼을 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아들이 부모보다도 며느리 말을
더 신뢰하거나 아들 내외가 합심하여 도전하는 느낌이 들 때‘품안에 있었을 때나 자식이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 ‘너도 애 낳고 키워봐라’는 후한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렇지만 자녀가 결혼과 함께 독립적인 개체라고 인정하면 그런 느낌이 훨씬 덜 든다.


빈 둥지 증후군 극복의 열쇠는 친밀한 부부관계
 다음으로 자녀가 둥지를 떠나 부부만 남았을 때 두 사람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보자. 혹자는 결혼하여 첫 자녀가 출생하기 전처럼 부부끼리만 지내는 시기를 다시 맞이한다고 해서 이 시기를 제2의 신혼기라고 표현한다. 이때는 제1의 신혼기처럼 부부간의 사랑이 증가하기도 하지만, 부부가 남남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왜일까? 빈 둥지 시기 이전에는 부부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더라도 자녀가 부부의 초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녀 존재 자체가 완충 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다투더라도 별다른 화해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만이 살아갈 때는 다르다. 부부의 초점은 자녀가 아니고 이제는 배우자이다. 문제는 상당수 부부가 사소한 것에도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 시기를 맞이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그렇게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는가를 모르고 살았다고 느낀다. 하찮은 문제로 다투면서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잘 모른다. 그러다가 아내는 남편을 혼자 두고 출가한 자녀 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자녀들도 그럴 때마다 힘이 든다. 그러므로 자녀는 결혼하여 둥지를 떠나기 전 부모가 잘 사실 수 있을지 점검해야 한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생의 중반기를 넘어서면 여러 가지 모임 중에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모임이 적어도 하나는 된다.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지 못하는 부부가 있다. 왜 혼자만 빨리 가는지, 왜 이렇게 꾸물대고 있는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녀를 모두 둥지에서 떠나보내기 전, 두 사람이 함께하는 기회를 가져야 나중에 고역을 덜 겪는다. 물론 부모의 문제점을 자녀가 먼저 알아차리고 둥지를 떠나기 전 해결해 준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빈 둥지 시기의 경험이 항상 개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그동안 집안에서 자식 키우느라고 고생했지만, 이제부터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롭게 배우자와 관계를 더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를 키우는 젊은 시절부터 자녀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여 가족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과거 평균 수명이 짧은 시절, 텅 빈 둥지 시기는 결혼 생활을 하는 전체 기간의 중간 정도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빈 둥지 시기를 경험한 이후에 살아야 하는 기간이 그 전보다 두 배 정도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 생활은 자녀들을 둥지에서 떠나 보내기 전부터 부부의 장래를 생각해 보는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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