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어느 날 대안 스님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대안 스님은 어미를 잃은 불쌍한 너구리 새끼를 몇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젖을
못 먹여 거의 빈사 상태였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잠시 이 어린 것들을 좀 돌봐
주시겠습니까? 마을로 내려가서 젖이라도 좀 구해 와야겠습니다.”
그는 원효에게 새끼 너구리들을 맡기고는 서둘러 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젖을 구하러 간 사이에 원효의 품에서 너구리 새끼 한 마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
보통 낭패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대안스님이 젖을 구해 헐레벌떡 돌아와 보니 원효가
죽은 너구리 새끼를 품에 안고 애절하게 경을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 “예, 영혼이라도 좋은 데 가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대안 스님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경 읽는 소리를 죽은 너구리가 알아듣습니까?”
“너구리가 알아듣는 경도 따로 있습니까?” “있고말고요. 제가 읽을 테니 들어 보세요.”
그러더니 대안 스님은 원효의 품에서 너구리를 빼앗은 다음 얻어 온 젖을 정성스럽게
먹이면서 말했다. “자, 이것이 너구리들이 알아듣는 경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빵은 어떤 심오한 교리나 설교보다 더 절실한 복음이다.
현재 세계 인구의 24퍼센트인 12억이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고,
2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 인구 중 60퍼센트가 절대빈곤층이다.
세계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오늘도 식사를 거르고 허기진 채 잠자리에 들고 있다.
찰스 스윈돌은“만약 당신이 차를 가졌다면 세계 부자 10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집과 차를 가졌다면 5퍼센트 부자 안에, 집과 차에다 통장까지 가졌다면 그대는 세계
3퍼센트 부자 안에 들어간다.”라고 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굶어서 죽고 나머지 절반은 배불러서 죽고 있다.
하나님은 형편이 좀 더 나은 10퍼센트의 자비심에 가난한 이웃을 맡기신 것이다.
“여러분의 친구 한사람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 사람에게 여러분이‘` 참 안됐구려. 따뜻하게 지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는 말만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 따위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믿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선한 행실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증명해 내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죽은 것입니다”
영혼들의 곤경에 무심한 채 말만 무성한 종교는 죽은 종교이다.
처연히 울고 있는 과부에게 할 말이 없는 종교는 거짓 종교이다.
상실감에 떨고 있는 고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종교는 사이비 종교이다.
소망 없이 굶주리는 이웃에게 냉정한 종교야말로 배척받아야 마땅한 이 시대의
이단이다. 오늘날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 찾기에는 너무 고고하고,
부둥켜 안기엔 너무 화려한 십자가로 치장되었다.
교회여, 제발 가난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경을 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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