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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by 은빛지붕 2024. 3. 13.
 

중세에 부루노라는 수도사가 있었다. 한번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개구리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통 기도할 수가 없었다. 참다못한 그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녀석들아, 수도사가 기도하려고 하는데 너희들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구나! 좀 조용히들 해!”

그러자 개구리들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창문을 닫고 다시 기도하려는데

이번에는 언덕 너머 개구리들까지 합세한 듯 더 크게 울어댔다.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면 조용

해지고, 창문을 닫으면 다시 울어대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 화가 난 수도사가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했다.
“하나님, 제가 진지하게 기도를 좀 하려는데, 개구리들 때문에 시끄러워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저 개구리들을 모두 쫓아내 주시든지 아니면 벙어리를 만들어 주셔야겠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그런데 저 개구리는 누가 만들었느냐?

개구리라고 기도할 자격이 없겠느냐? 구리라고 찬양할 특권이 없겠느냐?

왜 너 혼자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개구리와 함께 기도하고 개구리와 함께 찬양하면

되겠느냐?”수도사는 개구리를 방해꾼으로만 알았는데 개구리들도 기도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책하며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개구리 형제 여러분, (개구리는 수컷만 운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껏 기도하십시오. 목청껏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저도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사실 그날 저녁 개구리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해석하는

수도사의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다.

마음을 고쳐먹었을 때 수도사의 마음은 다시 평화로울 수 있었다.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미래의 축복을 약속받은 사람이었다. 형 에서와 20년간 해묵은 과거를

청산하고 홀가분한 음으로 세겜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딸 디나가 그 땅의 추장인 세겜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야곱의 아들들이 동생을 수치스럽

만든 세겜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복수극을 벌인 것이다. 감정은 감정을 부르고 불행은 불행을

부른다. 이때에는 문제가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해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그의 환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야곱 자신에게서 찾았다.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즉 30년 전, 하나님과의 약속과 서원(창세기 28장 18~22절 참조)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야곱의 생애는 벧엘에서 시작하여 벧엘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나그네 생활을 시작한 곳도 벧엘이요, 나님의 축복을 받은 곳도 벧엘이요, 

 

30년 후 나그네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확인한 곳도 벧엘이다.

그러나 야곱이 목적지를 상실하고 중간에 주저앉았기 때문에 그런 불행을 만난 것이다.

때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처방은 의미심장한 한마디였다.‘의복을 바꾸라 그리고 벧엘로 올라

가라!’ 무슨 뜻인가? 옛 생활을 청산하고 왜곡된 자화상을 바꾸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야곱을 불행하게 만들어온 것은 그부정적인 자화상이었다.

그 자화상을 바꾸지 않는 한 야곱은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 갇힌 용렬한 야곱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환경이 아니라 모두 마음속에있다.
그러므로 환경을 탓하거나 상대를 바꾸려하지 말고 내 생각을 바꿔보라.

그리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의외로 단순해질 것이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내가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