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끔 마음이 울적하거나 심란할 때 마을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절이 하나 있다. 그 절에는 주지 스님인 불암 스님이 계시고 그 아래 시봉하는 스님이 서너 분 계시는 데 모두가 비구니 스님이시다. 그 중에 방장 스님이 예진이라는 법명을 가지신 스님이고 그 아래에 체코에서 오신 파란 눈의 명은 스님이 계시고 또 그 아래에 몇 몇 학승이 계신다. 본사인 칠불암이 금오산 첩첩산중 꼭대기에 있어 해 전에는 겨우겨우 올라가서 법회에 참석 했으나 올 초에는 한 번 올라가다 식겁을 해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이제는 다시는 못 올라 오겠네 하며 백기투항을 한 바 있다. 예진 스님도 내가 귀향을 한 일년 전에 칠불암에서 만났는 데 생전 처음 본 나를 그리도 정답게 맞아 주셔서 그 때부터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런 인연이다. 그래서 예진 스님이 중창한 마을 인근에 있는 칠불암의 말사인 중흥사를 그 후로 간간이 들리게 된 절이다. 그래도 갈 때마다 과분할 정도로 환대를 하고 다정해서 어떤 때는 고향의 오누이들이 먼 타향에서 돌아 온 오빠를 맞이하듯 찌든 감정이 한꺼번에 풀어지듯 편안하다.
이제 오십 중반에 든 듯한 예진스님은 참 얼굴이 동자 같이 맑다. 웃을 때는 언제나 눈 부터 웃는다. 언제라도 이야기 끝에 웃는 눈웃음이 귀엽다. 무슨 허실한 얘기를 흘려도 눈부터 웃어 주어 話者의 면목을 세워준다. 맑은 눈동자로 사바세계에서 지친 내 몰골을 꿰뚫어 본다. 오늘은 거사님의 얼굴이 안 좋네, 늘 건강 조심하시고예! 하며 늘 안녕을 염려한다. 평생을 통해서 안사람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못한 말이 참 고맙고 고무라워서 어떤 때는 한참을 사랑의 눈으로 쳐다 본다.
예진 스님의 세 자매가 모두 출가를 했다. 보기 드문 현상이라 맨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저으기 놀랐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사 때문에 어릴때 이 집 저 집 둘레둘레 돌아 다니다 산사의 공양간으로 스며들어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학승으로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지금의 주지스님인 불암 스님을 만나 세 자매가 이 절 저 절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 십년의 수행생활에 이제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세상사람들의 고통을 녹여주고 또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오늘 법요식이 거행 된 중흥사도 예진 스님이 중창 했으니 그 공덕이야 이루 말 할 수 없으리라.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이 끝나고 긴 줄의 공양이 진행 되고 달디 단 백설기를 베어 물고 시원한 냉미역국을 한 입 후르륵 하는 가운데 노송과 노송사이에 차려진 무대에서 작은 음악회가 시작 되었다. 사회는 예진스님이 맡았는데 솜씨가 아마튜어를 넘는 것 같아 호기심은 고조 되고 무명가수의 곡조에 흥겨운 박수로 관중을 유도하고 덩실덩실 춤까지 너울대는 모습에 늘 얌전하고 조근조근한 예진 스님이 맞나 할 정도로 갸우뚱하고 넋이 빠져 버렸다. 옆에 앉은 집사람과 내가 늙은 손바닥으로 서로 눈을 맞추며 박수를 치기도 하며 흥겨워 하자 스님도 신이 났는지 소나무 사이로 이리저리 관중들의 시선을 모으며 빙글빙글 돌아 다닌다. 연등이 만장처럼 하늘에 둥실대고 부처님도 신이나서 눈을 껌뻑껌뻑 대시고 청량한 하늘에 구름도 맑다.
잠시 잠간 왔다가는 세상에 매일이 이렇게 기분 좋은 날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명가수의 간드러진 허리가 살랑살랑거릴 때 누가 툭 어깨를 친다. 거사님 좋은 날! 성불하세요! 예! 스님!
스님도 좋은 날 되시고요! 성불하세요! 집사람과 예진 스님과 내가 합장을 한다. 산사의 노래소리와 늙은 삭신이 허리를 편다.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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