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온 가족이 등산을 했다.
경기도 어느 한적한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은 우리가족을 조용히 반겨주었다.
산은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다. 첫 딸을 낳을 때도 나는 부지런히 산을 올랐었다.
아들을 낳을 때도 부지런히 산을 올랐었다. 그러다 딸, 자 산 오르는 일을 멈추었다.
그렇게 산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아니 잊혀져 갔다. 오히려 내 배가 산을 닮아 점점
솟아나온 전형적인 40대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에 묻혀 살아왔던가?
무엇에 홀려 살아온 것일까?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는가? 등산하면서 그간 잊혀졌던
상념들이 내 머리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린 식구 셋 때문에 혼자 상념에 침잠할 틈이 없었다.
딸은 뒤뚱거리며 온몸을 내게 맡기고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아내는 뒤쪽에서 우리와 간격을 줄이기
위해 끙끙대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은 맨 앞에 가고 있었다. 딸아이는 엄살이 심해
가다 멈춰서고 멈춰서다 가고 나의 등산을 완전히 흩어 놓았다. 적당히 오르다 쉬어야 다시 활력을
얻는데 이건 자주 쉬다보니 오히려 근육이 풀어지고 힘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날 아들 녀석 표정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 아프다, 이러다 병나겠다 하며 온갖 변명과 협박을
일삼던 새다리에 허약한 아들이 그날따라 혼자 끝까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대신 딸아이가
그날 나를 무척 성가시게 굴었다. 그날따라 딸아이는 쉴새없이 재잘거렸다. 여자는 비밀이 많아야
된다나. 지 애비는 부축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급기야 나는 신경질 섞인 소리를 내며 좀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딸아이는“아빠 이렇게 말이 많아야 사춘기가 없데, 선생님이 그러셨어.”
하고 내 핀잔에 핀잔을 가했다.
우리 둘은 그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다 쉬다, 쉬다 가다 하며 딸과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어느새 불쑥 커 버린 딸이 새롭게 보였다.
나는 딸아이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자주 이런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은 이렇게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내 앞에서 끙끙거리며 산을 오르고 있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저 녀석, 이제 주저앉을 때가 되었을 텐데. 제발 나에게 오지 마라.
네 누나로 족하다.’이윽고 하산할 때쯤 딸아이는 제 엄마에게 가고 아들을 부축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거의 다 왔을 무렵, 드디어 아들 녀석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죽겠다. 너 알아서
내려와라.’나는 나대로 걸어내려 왔다.한바탕 울음소리가 나더니 조용했다. 보니 저 만치 제 엄마
등에 업혀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 사내 자식이 저렇게 약해서…. 앞이 심히 걱정된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포기하지 않는 것, 노력하는 것
그날 우리는 그렇게 가족 등산을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는 이놈들과 등산을 오나봐라 하며
다짐에 다짐을 하였다. 그날 저녁 다들 피곤한지 아이들은 일찌감치 자기 침대에 들어가 코를 골며
잤다. 아들 녀석이 이불을 차내지는 않는지 살피러 갔는데 머리맡에 일기장이 펴있었다.“
나는 오늘 포기하는 것보다 노력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깨달았다.”란 글이 적혀 있었다.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놈도 제법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잠자는 아들 옆에 들어가
두 팔로 아들을 껴안았다. 그날 산에서 맡은 그 신선한 냄새가 아직도 아들에게서 풍겨났다.
그래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 그것이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