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네 아빠는 정말 잘사는 것 같아요.” 언젠가 우리 큰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와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왠지 비교되는 것 같아서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한편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길래 그렇게 잘 살고 있을까?” 무슨 얘기인지 듣고 보니 잘산다는 것이 자동차 3대가 있고, 집이 굉장히 크고 멋있으며, 멋진 정원까지 있다는 얘기입니다.흔히 멋진 자동차가 몇 대고, 집이 굉장히 크고 멋있고, 멋진 정원도 있으면 잘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잘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부자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부자로 살면 잘산다고 착각합니다. 부자로 멋지게 살면 살맛 나게 잘사는 걸까요? 사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착각이 있는데, 그것은 가난하게 살면 못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듯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못사는 것도 아닙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멋을 내고 싶고 멋을 부리고 싶고 또 남이 멋있다고 잘 봐주기를 바랍니다. 물론 평범한 학생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요즘 청소년들까지 멋 내기, 멋 부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중·고등학생들이 입기 원하는 유명 브랜드 옷이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까지 하는데 한때 해외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했다가 우리나라에도 건너온 모양입니다. 비싼 이 옷을 사 주려는 부모들은 등골이 휠 지경이라서 ‘등골 브레이커’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그 옷값에 따라 입은 학생의 계급이 정해지고 친구들의 계급이 결정되고 사람값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가의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 멋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들거나 구두를 신고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지는 이 천박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 왔습니다. 이런 사회의 풍속도가 어른 따라잡기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전염된 것입니다. 옷값보다 사람값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현대인은 멋은 내려고 애쓰나 맛은 잃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멋 내기 전에 맛을 내야 합니다. 참으로 멋있는 사람은 멋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맛을 내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sapiens)’을 뜻하는 라틴어는 ‘맛을 아는(sapere)’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맛을 아는 사람, 맛을 내는 사람입니다. 멋을 내기보다는 맛을 내기 위해서는 피땀을 흘리는 훈련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초밥 경력 20년의 안효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맛을 내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생선 초밥 하나를 위해서는 밥알이 350톨일 때 제일 맛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찬용으로는 밥알이 280톨일 때 제일 맛있다고 합니다. 그는 불철주야 이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잡을 때는 정확히 350개, 왼손으로 잡을 때는 정확하게 280개의 밥알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공개적으로 시험을 했는데, 10번 중 8번은 정확하게 밥알의 개수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초밥 드실 때 뭐로 드세요? 젓가락이요? 초밥은 손가락으로 먹어야 맛이 있는 거래요. 인생을 맛있게 살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손이 필요합니다. 맛있게 사는 것이 멋있게 사는 겁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바닷물이 함유한 2.7퍼센트의 소금 때문이라고 합니다. 2.7퍼센트의 염분이 나머지 97.3퍼센트의 성분을 지탱하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2.7퍼센트의 소금만 있으면 나머지 97.3퍼센트의 물을 견고하게, 건전하게, 싱싱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2.7퍼센트의 맛을 내는 사람이 있어도 이 사회는 병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맛’보다는 ‘멋’ 내려고 혈안인 것 같습니다. 멋 내는 사람은 많은데, 맛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작 맛을 내야 할 사람들이 맛보다는 멋만 부리고 있으니, 세상이 이토록 무미(無味)한 것이 아닐까요.
어떤 유명 연예인은 방송에 한 번 출연하면 천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방송뿐 아니라 영화 한 편에만 출연해도 수억 또는 수십억 원의 돈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단 연예인이나 배우만이 아니겠지요. 유명한 운동선수들은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연봉으로 그들의 몸값을 뽐내기도 합니다. 이런 비싼 몸값을 받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고 부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비싸고 멋진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한 푼도 받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돈을 쓰면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방에서 땀 흘리며 밥하고 설거지하는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나와 거리를 청소하느라 땀 흘리는 분들, 주차장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감당하시는 분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을 빠뜨리지 않는 분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먹거리를 정성껏 준비하고 그것을 배달하시느라 애쓰는 분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이렇게 저렇게 섬기는 모든 분이야말로 그저 겉멋 내는 사람들보다 매우 귀한 가치를 지닌 참맛 내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상징적인 ‘성’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타락과 멸망을 상징하는 바벨론이며, 또 하나는 평화와 구원을 상징하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이 두 성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릅니다. 바벨론을 수식하는 단어는 언제는 ‘거대한(great)’이고 예루살렘을 수식하는 단어는 언제나 ‘거룩한(holy)’입니다. ‘거대한 회사’, ‘거대한 수익’, ‘거대한 교회’를 ‘멋’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거대함’이 ‘거룩함’을 삼켜 버린 것 같습니다. 거대함의 겉멋에 빠져 있는 세상에 거룩함의 속 맛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거대함만을 추구하는 가치의 반전을 가장 극적으로 실천하시고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큰 것, 높은 곳을 지향하며 신의 거대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 몸부림치지만 예수는 오히려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것도 가장 비천한 자리로…. 이것이 거룩함의 본질이며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이제 교회도 거대한 교회가 아니라 거룩한 교회가 되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비빔밥과 같습니다. 비빔밥마냥 온통 뒤죽박죽입니다. 비빔밥에 빠져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고추장과 참기름입니다. 이것이 빠지면 맛을 낼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붉은 고추장과 참기름은 거룩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빔밥마냥 온통 뒤섞여 있는 인생 속에 거룩하신 예수가 들어올 때, 우리는 맛 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비빔밥으로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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