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외국인들은 한국가정을 굉장히 부러워했는데 그 이유는 효(孝) 사상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 미풍양속은 흘러간 옛 추억이다. 최근 들어 노인을 짐스러워하고 심지어 내다 버리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다.필자는 오래전부터 서울 무악동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매 학기 연세대 학생들 그리고 무악동 ‘평화의 집’ 신부님과 함께 목욕봉사를 한다. 그곳 주변에는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노인이 수두룩하다. 더러 자식이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한 노인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좋게 표현해서 자식과 생이별한 사람들이고 사실대로 말하면 버려진 노인들이다.독거노인들은 그럭저럭 생계는 유지하고 있지만 인정에 굶주려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중목욕탕에서 손자뻘 되는 학생들이 때를 벗겨 주는 것을 무척 고마워하지만 무엇보다 말상대가 생겨서 감격해한다.
현대판 고려장
독거노인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노인들이 돈이 없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늙었어도 돈이 있으면 자식이 부모를 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 모시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부모의 주머니가 텅 비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식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만일 부모가 중병에 걸리면 자식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타박하기 일쑤이다. 버젓이 자식이 있어도, 자식이 없다고 우기는 노인들 대부분은 사실은 자식한테 구박을 받아 쫓겨난 사람들이다. 자식이 보고 싶고 손자들 재롱이 눈에 선해 독거노인들은 자식이 방문해 주기를 학수고대하지만 이미 자식은 부모를 잊은 지 오래이다. 먼옛날 우리가 먹을 것이 부족하던 때 더러 노인들을 고려장한 적이 있다. 먹는 입을 덜기 위해 부모를 먼 산에 내다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풍요시대에 현대판 고려장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드릴 밥이 없어서 고려장을 지내는 것이 아니다. 병든 부모가 보기 싫고 짐스러워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효도 운운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왜 갑자기 이런 풍조가 만연해졌는가? 좋게 말하면 서구식 부모관계가 정립(定立)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재미로 낳을 뿐 자식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 말이다. 여기서 이 가치관의 면모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왜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동양사상이 없었지만 그런대로 부모-자식관계가 유지되어 왔는가를 이해할수 있기 때문이다.‘자식을 키우는 재미로 낳는다.’는 서구부모는 그에 걸맞게 자녀를 양육한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자식을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집까지 사주지 않는다. 그 예로 미국 중류 가정을 살펴보자. 부모 대부분은 자녀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뒷바라지한다. 그런데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교육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자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여부를 결정하는데 공부를 잘하면 대학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취업전선에 나선다. 자식 또한 대학을 가도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장학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한다.
자식들의 서구식 부모관
이렇게 서구사회에서는 부모 대부분이 자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녀의 독립심도 일찍부터 발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8살이 되는) 해부터는 대부분 독립한다. 즉 대학을 다니든지 말든지 집에서 나와 스스로 독립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부모와 가끔 연락할 뿐 자주 방문하지 않는다. 우리 사고방식으로 보면 완전히 깨진 가정이다. 그러나 서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적이고 지극히 건강한 부모-자식관계이다. ‘부모가 효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는 서구식 사고방식이 요즘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그래서 큰아들이라 하더라도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하고 부모가 경제력이 없으면 인연을 끊으려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 자녀들이 서구의 자녀들처럼 부모를 ‘나 몰라라’ 해도 되겠는가?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해 가슴이 미어질 일이다.
한국부모들은 이조시대의 윤리관 즉 ‘가계계승’, ‘가문번성’등의 가치관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지만, 자식들의 부모관은 약싹 빠르게 현대화했다. 여기서 비극이 싹트기 시작한다. 한국의 자살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1위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노인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자식이 돌보지 않고 국가도 마땅한 복지대책을 세워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 자식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영화 ‘워낭소리’의 소처럼 뼛골 빠지게 일했지만 나라와 자식에게 외면당해 자살을 감행하는 것이다.
자식들의 서구식 부모관은 대세(大勢)이며 이들에게 효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가? 해답은 단 한 가지뿐인데 바로 자녀관을 서구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서구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부모처럼 자식에게 집 사 주고 미리 유산상속을 하는 국민도 드물다. 요즘 자식들에게 미리 유산상속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식자 성인층에서 급속히 번지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좀 더 영악해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늘날 한국인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고 있는데다가 나이가 들수록 돈이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들도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술로 세월을 보내거나 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컴퓨터도 배우고 독서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 있게 죽음을 맞이하고 후손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생의 황혼에 스스로 삶을 버리는 노인이 지난 10년간 2.8배로 껑충 뛰었다.노인들을 위로하고 돌볼 사회 안전망이 매우 허술한 상태에서 자식들마저도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경제불황 속에 평생 모든 것을 자식에게 바치고도 쓸쓸한 노년을 보내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거노인이 급증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노인을 가치 없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부모가 경제력이 없으면 짐으로 여기거나 아예 인연을 끊으려 하는 요즘 세태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효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만 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더 깊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 전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셨던 그분들께 이제 우리의 최선을 다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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