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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꿈꾸는 자유와 희망을 품는 용기

by 은빛지붕 2024. 11. 1.

 

 

▶ 이상향에 관한 꿈 | 인류 문명에는 다양한 모습의 이상향(理想鄕)이 등장한다.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는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는 이상적인 공동 사회를 ‘유토피아(Utopia)’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그리고 있다. 유토피아에는 왕이 없고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6시간 노동하고 라틴어와 논리학 같은 머리 아픈 공부 없이 여가를 이용해 자기나라 말로 교양을 쌓는다. 유토피아에는 화폐가 없기에 범죄도 없으며 계획적 생산과 합리적인 분배를 통해 공평한 세상이 된다.
 물론 모어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성을 담은 ‘유토피아’였지만, 지금은 ‘유토피아’라는 용어 자체가 이상향의 대명사처럼 정착되어 ‘~피아’는 유행처럼 각 분야의 이상적 사회나 환경을 의미하는 데 애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파라다이스’, ‘엘도라도’, ‘엘레시움’, ‘아카디아’, ‘샹그릴라’, ‘니르바나’, ‘극락’, ‘무릉도원’, ‘율도국’, ‘에덴’, ‘천국’ 등 이상향에 대한 묘사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묘사하는 이상향에는 대략의 유사점이 등장하는데, 거기에는 ‘평화와 번영’, ‘공평과 무사’, ‘복지’를 누리며 ‘안락’하게 ‘불로장생’, ‘차별’이나 ‘횡포’, ‘시비’와 ‘고통’이 없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새뮤엘 버틀러(Samuel Butler, 1612~1680)는 미지의 이상향을 ‘에레혼(Erehwon)’이라고 명명하며 그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nowhere, 에레혼의 반대 철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과연 이상향에 관한 꿈은 허망한 것일까?


▶ 마틴 루터 킹의 꿈 |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차별과 고통을 당하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꿈과 같은 이상을 제시한다. 그의 연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은 인류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가 부르짖은 것은 바로 ‘자유와 정의, 평등과 희망’이었다. 지상 최대의 번영을 구가하는 미합중국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킹 목사의 꿈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 선견자의 비전과 메시아의 꿈 | 구약 성경 시대 선지자 아모스는 “너희는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마르지 않는 시내처럼 흐르게 하라”(아모스 5장 24절, 현대인역)고 하는 이상적 사회상을 제시했으며. 선지자 예레미야도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예레미야 23장 5절)라고 기록하며 이상적인 왕의 도래를 예언하였다. 신약 시대를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 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선언으로 자신의 사역을 열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 4장 17~19절, 이사야 61장 1, 2절 참조).

 

이것은 현세에서 시작, 확장되어 내세에 이르러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꿈이었다.
선지자 다니엘은 바벨론 왕국의 느브갓네살 왕이 꾼 세상 역사에 관한 꿈을 해석하면서 세상 왕국이 마치고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비록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누구에게나 꿈꿀 수 있는 자유와 희망을 품을 용기는 허락되었다. 그리고 원하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투쟁하고 가입할 수 있는 약속과 권리가 십자가를 통해 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