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건강한 대화 패턴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소위‘인정형(Validating)’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대화의 두 번째 패턴으로 처음 것보다는 대화의 굴곡이 심하고 때론 극과 극으로 치솟는 듯한 경향이 가득한 대화의 유형이다. 거트만(Gottman) 박사는 이것을 이름하여‘굴곡형(Volatile)’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좋을 땐 대화의 질이 아주 달콤하고 친밀하다가도 나쁠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열띠게 말싸움하다가 상처를 주는 긴장된 관계로 극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마디로 대화를 통해 나누는 감정의 굴곡이 심해서 극과 극인 경우이다.
굴곡형 부부가 나누는 다음의 대화에 귀 기울여 보자!
●아내 : 여보! 전 당신이 좋아요.
■남편 : 당신도 알지? 내가 당신 좋아한다는 거….
●아내 : 그런데 여보!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하든지 항상 경쟁하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 사랑하는데도 경쟁하는 것 좋지만 또 다른 경쟁이 있어요. 예를 들어 만약 내가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얘기하면 당신은 아주 더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반응한단 말이에요.
■남편 :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아내 : 정말 그래요. 만약 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무릎, 팔, 머리, 어깨가 아프다고 한단 말이에요.
■남편 : 내가 하는 말은 나도 아픈 곳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을 하려는 거예요.
●아내 : 그런데 그걸 나보다 더 아프다고 하면서 할 수는 없는 거지요.
■남편 : 그게 아닌데….
●아내 : 아프다는 사람에게 나는 더 아프다고 얘기하는건 동정이 아니지요.
■남편 : 당신이 아프다고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아내 : 그렇다니깐. 당신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먼저 좀 이해해 주세요.
굴곡형 대화
위의 대화에서 우리는 서로가 너무 동등한 나머지 의견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다 보니 억눌려지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표출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둘 다 분석형이다 보니까 아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남편은 남편대로 할 말이 있어서 한술 더 뜨는 상황이다. 이에 반응해서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게 왜 이해해 주기는커녕 한술 더 뜨냐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서로가 무슨 말이라도 할수 있는 안정감이 있다 보니까 실망한 얘기를 해도 감정이 아주 심하게 고조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이런 부부는 의견을 달리해서 티격 다투다가도 오래지 않아 금방 화해점에 도달하는 대화를 나눈다. 르베카와 요한 부부가 나누는 다음의 대화에 귀 기울여 보라!
●르베카 : 우리가 늘 경제적으로 쪼달리는 게 걱정이 돼요. 버는 대로 다 쓰니까 말예요
■요한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문제가 전혀 없어요. 그건 전적으로 당신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르베카 : 그렇지 않아요. 그건 당신이 잘못이지. 내 말대로 우리가 저축을 좀 하면서 산다면 제가 좀 더 안심이 될 거예요. 바로 이 점에서는 당신이 맘에 안 들 때가 있어요.
■요한 : 그래요? 당신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저축을 했으면 좋겠단 말이죠. 그런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지는 않아요.
●르베카 : 여보! 저도 가정 경제에 문외한은 아니에요. 자라면서 느끼면서 마음에 확신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니까 제 말에도 분명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한 : 여보! 걱정 말아요. 나에게도 다 계획이 있으니까요. 내가 왜 가장이 돼 가지고 가정 경제를 생각 안하겠어요. 내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날 믿어 줘요. 당신이 경제 문제로 따지려 들면 나를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영 기분이 안 좋아요.
●르베카 : 당신을 안 믿는 건 절대 아니에요. 좀 저축을 하면서 살면 더 좋겠다는 얘긴데, 뭐가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지 알 수가 없네요. 남자들은 이 점에 너무 예민해서 그런가요?
■요한 : 별 추측을 다 하네요. 남편인 나도 계획이 있으니까 그걸 있는 그대로 믿어 달라고 말하면 믿어 주면 안 될까요?
●르베카 : 안 믿는 건 아니지요. 당신을 믿어요. 그런데 그 계획이 어떤 건지 알려 줄 순 없어요? 그리고 나도 그 계획을 세우는 데 함께 동참할수는 없는 건가요?
■요한 : 알겠어요. 함께 시간 내서 구체적으로 의논해 봅시다.
이런 굴곡형의 부부는 자기들의 관계를 요약해서 소개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사이는요! 좋을 땐 아주 좋고 나쁠 땐 아주 나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영어로는‘러브 앤드 헤이트 릴레이션십(Love and Hate relationship)’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사랑과 미움의 관계가 범벅되어 이루어지는 묘한 관계로 생각보다 많은 부부에게 편만해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어떤 부부가 자기들에게 이런 굴곡형의 관계에 있노라고 실토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커플이라면 그나마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부는 싸울 땐 싸우더라도 또 돌아서면 서로의 상한 감정이 쉽게 풀어지는 커플이다. 그 이유는 서로 간에 나누는 좋은 경험이 나쁜 경험보다는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없었으면 더 좋은 나쁜 경험이 있는데도 결혼 관계에 남도록 만들어 주는 주된 이유는 그만큼 때론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어려움을 충분히 견딜 만한 힘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망한 나머지 싸우고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도 “원래 이 사람이 이렇지 않는데, 따뜻하고 자상하고 애정 넘치는 사람인데…. 몹시도 피곤한 모양이지. 내가 참고 봐 줘야겠는 걸.”이라고 생각하면서 참고 이해하면서 넘어가 줄 수 있는 정서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다. 아니면 싸울땐 자기 표현을 정확히 하면서 철저한 입씨름을 해도 결국에 가서는 문제를 풀어 나가는 쪽으로 대화가 이끌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곤 불똥 튀기는 열띤 쟁론을 하고 나면 깨끗하게 화해하며 서로의 상처난 감정들을 따뜻하고 적절한 정서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마음과 기술을 터득한 경우일수도 있다.
정서의 댐에 즐거운 추억을 많이 저축하라
그러나 굴곡형의 대화를 나누는 부부가 항상 안전하지만은 않다. 만약 결혼의 연수를 거듭하는데도 쟁점적인 요소가 풀리지 않은 채로 반복된다든지, 아니면 나쁜 경험이 더 많아지면서 지속되다 보면 그 관계는 금이 가고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경우라도 굴곡형의 대화를 나누는 부부는 같이 사는 세월이 깊어지면서 서로 상처 주는 부정적인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그 공간을 서로를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대화로 꼭꼭 채워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때론 함께 사는 일이 힘들어질 때 뒤돌아보면서 용기와 위로를 받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저축해 놓는 것이다. 이런 추억들이야말로 때론 예상치 않게 닥쳐오는 관계의 가뭄과 기근의 때를 넉넉히 이기게 해 주는 정서의 댐, 또는 저수지가 되는 것이다. 그대는 오늘 내일의 관계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가? 만약 계속 저축하지 못하는 상태로 지난날 모아 두었던 저수지의 물을 계속 뽑아서 쓰는 상황이라면 메말라 바닥이 보이는 위급한 때가 오기 전에 오늘부터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투자는 결코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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