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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과 “개천절 開天節”

by 은빛지붕 2024. 10. 3.

 

 

10월은 명실공히 본격적인 가을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면서, 연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달이다. 일기도 순조롭고 먹거리가 풍부하여, 문자 그대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며,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넉넉해진다.학생이나 직장인들이라면 개천절과 한글날까지 들어있는 10월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중에서 개천절(開天節)은 우리 민족의 시초를 기리는 날이다. <삼국유사>에 들어 있는 고조선 건국신화에는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이 소개되어 있다.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세상에 내려와서 나라를 세우고,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견뎌 낸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단군 왕검을 낳는다는 내용의 단군신화는 어린이라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신(神)과 통치자가 널리 인간의 이로움을 장려하고, 호랑이와 곰이 한 굴에 있으면서도 싸우지 않는 모습을 묘사한 우리 선조들의 신화는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사람들이었음을 보여 준다.성경의 창세기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역사 대대로 수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어왔다. 어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인간의 외형적인 모양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하며, 따라서 하나님도 우리 인간처럼 이목구비가 있는 얼굴과 손발을 가진 분일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영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처럼 물리적으로 제한된 육체로 존재할 수 있느냐며 그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그분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속성을 인간도 일정 부분 공유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비슷한 의미로, 인간과 다른 짐승들의 공통적인 부분을 들어내고 남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에 해당되는 요소라고도 말한다.


성경이 기록된 것과 비슷한 시대, 가까운 지역의 문헌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신]의 형상”이라는 표현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빛을 얻을 수 있다.그러한 연구들의 결과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등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웃 지역의 기록에서 “신의 형상”이라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은 언제나 왕 또는 통치자를 가리킨다고 한다.여기서 얻은 힌트를 가지고 다시 창세기를 보면,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인간이면 누구나가 “왕”의 수준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계급과 신분의 차별이 심하던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창세기가 21세기의 어떤 민주주의 사상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간의 존엄성, 인간 존중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못해 감동적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지은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수필집에는 저자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몬 페레스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어느 랍비가 자기의 제자들을 모아놓고 “밤이 끝나고 날이 밝는 정확한 시점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한 학생은 “양 떼 사이에서 개를 가려낼 수 있을 때”라고 대답했다.또 다른 학생은 “멀리서도 무화과나무와 올리브나무를 구별할 수 있어야” 날이 밝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랍비는 그 대답들이 흡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답은 “한 이방인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가 그를 형제로 받아들여 모든 갈등이 소멸되는 그 순간이 바로 밤이 끝나고 날이 밝는 순간이다.”였다.옆 사람의 얼굴에서 이목구비가 구분이 안 되고, 그가 내 형제인지 친구인지도 알아볼 수가 없으면, 아직도 어두운 밤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몇 차례 정권이 바뀌는 사이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우리 동포들 사이에 지역과 빈부와 세대의 차이에 따라 나타나게 된 극심한 분열과 불화이다. 그런 차이가 언제는 없었겠는가마는 근래에 발달된 통신과 정보 전달 수단을 통해서 상대편을 매우 모질고 폭력적인 말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행태와 그런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세력들을 볼 때 참으로 개탄스럽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10월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 선조들의 홍익인간 사상을 되살리고, 옆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나의 형제와 자매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다볼 때 그의 얼굴이 사랑스러운 내 형제, 내 자매로 보이면,

그때가 바로 밝은 새날의 시작이고, 하늘이 열리는 날[開天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