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글 모음

근사치 정의

by 은빛지붕 2024. 9. 23.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구조적 폭력을 지목하는 사회학자들이 많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합리성을 지나치게 신뢰하여 사회적 폭력을 과소평가했다. 이성적인 인간은 폭력을 멀리하고 사회적 정의를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믿었다.그러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달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강화되면서 구조적인 폭력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 권력 수단 그 자체가 폭력이 되어 근대사회에서 ‘정치적 폭력’과 ‘소유의 폭력’이 구조화되었다. 권력을 앞세운 폭력은 사회 정의를 짓밟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20세기 인류 사회는 이런 근대담론에 따라 사회 정의와 평화 전략이 수행되었다.그러나 구조적 폭력에 대한 대항 폭력은 발터 벤야민이 용납한 신적 폭력으로서 작동하지 않고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전략이 되었다. 지난 세기에 인류가 겪은 사회적 혼돈은 바로 이런 이론적 배경에서 기인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투쟁에도 불구하고 사회 정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제 탈근대 시대에 들어서 구조적 폭력은 극단적 폭력으로 진화되었다. 극단적 폭력은 지난 세기에 노골화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폭력에 비해서 상징화된 측면이 많다. 부르디외가 주목한 ‘상징적 폭력’은 드러나지 않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폭력이기 때문에 구조적인 폭력보다도 더 잔인할 수 있다.확실히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서 전쟁, 테러, 폭행 등과 같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는 생존, 복지, 정체성, 자유 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모독하는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이 심화되고 있다.슬라보예 지젝은 이런 상징적 폭력을 극단적 폭력의 심화로 이해하고 그것에 맞서는 탈근대적 저항 담론을 주창하고 있다. 물론 그 역시 벤야민의 신적 폭력을 전략화하고 있지만, 상징적인 폭력이 드러내고 있는 폭력의 객관화를 극단화시키는 데 있어서 새로운 안목을 보여 주고 있다. 지젝은 21세기 자본주의가 나은 객관적 폭력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등 장한 그 어떤 폭력보다도 잔인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 폭력이 난무하는 21세기 사회에서 사회 정의를 추구하기는 전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혜로운 인간들은 구조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에 맞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고상한 가치를 잃지 않았다. 인류는 여전히 폭력에 맞선 저항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적 폭력 이론에 따라 대항 폭력을 내세워 폭력에 맞선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된다는 걸 20세기에 우리는 체험하였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비폭력을 강조한다. 간디에 의해서 널리 알려진 비폭력 저항은 직접 폭력에 대한 전략으로서는 작동하였지만 오늘날 극단적 폭력의 시대에 객관적이고 상징적인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비폭력 평화주의는 평화를 이룩하지 못했다. 이후 폭력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반폭력 전략이 등장하였다. 에티엥 발리바르에 의해 제시된 반폭력 개념은 시민 인륜의 정치를 말한다. 올바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시민이 시민다운 행동에 나설 때 극단적 폭력을 근절시키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시민 인륜을 가진 시민다운 사람에 의해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완전히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또 완전히 불가능하지도 않다. 라인홀드 니버는 근사치 정의를 주창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창조된 합리적인 존재이지만 타락으로 인해 완전한 사회 정의를 구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인간은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 정의를 이룰 수 있다. 이 정의는 완전한 정의에 근사한 정의, 즉 근사치 정의이다. 이 근사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라인홀드 니버는 의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구조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은 고대사회에도 존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에스겔 18장 5~9절).
이 땅에 만연한 극단적인 폭력을 없애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인’이 필요하다. 그 ‘의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에 따라 이 사회에 근사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말한다. 상징적 폭력과 같은 새로운 폭력이 극단적으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근사치 정의를 실현하는 ‘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집) 숲이 건강에 좋은 이유 1  (3) 2024.09.25
쓰레기가 들어가면 …/GIGO  (1) 2024.09.24
쓸데없는 일의 의미  (1) 2024.09.22
지식혁명 시대/지식관리  (4) 2024.09.21
문제는 다시 리더십이다!  (1) 202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