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숲으로 갈까?
우리에게 산과 숲은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토의 전반적인 지형 조건이 산악으로 되어 있는 관계로 평지 숲을 가지고 있는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산은 숲이고, 숲이 곧 산이다.
사람들은 왜 산에 갈까? 혹은 사람들은 왜 숲에 갈까? 오래전에 북한산 국립공원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왜 산에 오르냐고 물었다. 약 58퍼센트의 사람들이 체력 단련을 위해서 산에 온다고 답하였다.
산이 운동하는 장소인 것이다. 운동하는 것의 일차적인 목적은 물론 건강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대부분이 건강해지기 위하여 산에 오는 것이다. 이 경우 운동은 육체적인 측면의 건강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마음이 깃든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과 정신적인 측면의 관계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것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육상 경기를 하듯이 산을 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아무튼 현재, 우리가 산을 오르는 방식은 육체적인 건강 혹은 단련을 위하여 산을 오르는 것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산에 오를까?
정신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산을 오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된 산행의 특징은 느릿한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 산을 오르면서 산의 모습을 눈에 익히고, 산을 구성하는 나무와 바위 그리고 그 안에 깃들인 생명체들과 온갖 무생물에게 관심을 둔다. 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서 산을 오른다면 산에 오르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정신 건강을 위하여 산을 오르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신체도 건강하게 하고 몸의 병을 치유한다는 점이다.자연 혹은 숲이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통적인 지혜이다.숲이 치유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인 근거를 갖게 된 것은 지리학자인 울리치의 연구 보고가 하나의 획을 긋는 큰 역할을 하였다. 1984년 울리치가 병실 창문으로 보이는 녹색 자연이 담낭 수술 환자의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에 발표하자, 치유와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학문적으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것에 신경 과학계가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환경이라는 영향 요인들과 뇌 신경과의 관계들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2009년 스텐버그 박사는 이러한 저간의 연구 결과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 방면에서 일종의 중간 결산이라 할 <치유공간들>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녀는 다양한 공간에서 얻어진 감각에 관한 연구 결과들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치유 혹은 우리 건강의 회복은 상당 부분 우리 마음속의 작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 숲은 이러한 우리의 뇌와 마음속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 것일까? 우리의 뇌와 마음은 기본적으로 오감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감은 산 혹은 숲에서 얻어지는 것과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도시의 환경에서 얻어지는 것이 다를까? 산과 숲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우리의 몸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숲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기
도시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지만, 산과 숲에 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몸을 감싼 환경으로 말미암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과의 접촉이 있게 된다. 산과 숲과의 접촉은 우리가 그 환경속에 침잠할수록 교감이라는 깊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필자는 흔히 숲과의 교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아이의 손을 잡듯이 숲과 손을 잡으라고 말이다. 아이의 손을 잡으면 아이의 기분과 체온이 내게 전해지고, 마찬가지로 나의 것이 아이에게 전해진다. 정서적 교감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숲에 손을 내밀고 그 숲을 껴안을 때 비로소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숲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거나 고요하게 멈추어 있으면 숲의 세계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속삭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말이 아닌 숲의 말로, 산의 언어로 걸어오는 말을 우리가 오감을 통해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교감이 시작된다. 숲이 우리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들을 얻고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숲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 숲이 내는 냄새, 녹색의 숲, 숲의 부드러움, 숲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숲을 지나는 다양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를 '송뢰’라 이름 지었고, 참나무류의 곁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갈잎의 소리’라 노래하였다. 그토록 열심히 산을 다니고, 숲을 지나쳤지만 진정으로 송뢰를 귀를 통해서 혹은 온몸으로 느끼고, 갈잎의 소리를 듣고 본 적이 있는가? 숲의 소리는 소음과 헤비메탈 음악과는 달리 우리의 귀를, 청각을 부드럽게 울려 준다. 이러한 숲의 소리는 고막과 청각 신경 계통을 통해서 뇌에 전달된다. 뇌는 이에 반응하여 우리의 감정을 부드럽게 조정한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항이다. 이러한 숲의 소리에 몰입하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진다. 또, 숲이 간직한 냄새는 어떤가?
숲에는 온갖 자연의 냄새가 있다. 피톤치드라 부르는 나무와 풀이 내는 냄새, 잎과 꽃과 과실의 향기, 생산자-소비자-분해자로 이어지는 생태적 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냄새가 우리의 후각에 부드럽게 스민다. 숲의 맛은 또 어떤가? 숲의 나무들이 만들어 숨구멍들을 통해 배출하는 신선한 산소와 수분은 얼마나 상쾌한가? 계곡을 굴러 내려와 바위에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물보라 속의 음이온은 또 어떤가? 우리가 별로 의식하지 않는 숲의 맛의 원천이다. 생태적 순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토양은 또 얼마나 부드러운가? 이 부드러운 흙은 만물을 키워 내는 바탕이다.산과 숲 혹은 숲이 있는 산은 정신적인 건강을 포함해서 건강한 환경 조건을 제공해 주는 곳이고, 치유의 공간이다. 특히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치유’는 단순히 병후 회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병후 회복을 넘어서는 질병 이전의 건강함을 추구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산과 숲이 치유의 장으로 온전하게 기능하게 하려면 우리도 산과 숲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산과 숲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한 이용 방식이 아니라 숲에서 머물고 소요하는 형식이 되어야 하고, 이용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산과 숲을 건강하게 두어야 그것과 교감하는 우리가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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