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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기, 우울증

by 은빛지붕 2024. 10. 10.

 

 

사람들은 누구나 잠시 슬럼프 상태에 빠졌다가도 다시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꾹 눌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시 튀어오르지 못하는 용수철처럼 침울한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울증이다.침울한 기분은 쓸쓸함, 슬픔, 불안, 절망, 허무, 답답함, 초조함 등의 다양한 감정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더라도 몸살감기, 코감기, 목감기 등 제각각의 증상을 호소하는 것처럼 우울증 역시 천의 얼굴을 가진 질환이다.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비유하는데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10명 중 1명은 우울증에 걸린다고 보고될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라고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
생각 외로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병의 치료법이 아니라 원인이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병에 걸렸는지를 먼저 알고 싶은 것이다. 현대 의학은 우울증이 단순히 유전적 또는 환경적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병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우울증의 원인은 크게 생물학적 원인, 심리적 원인, 사회적 원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생물학적 원인으로 유전적 요인과 신경 전달 물질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유전적 요인의 작용은 가족 연구, 쌍둥이 연구, 입양 연구 등을 통하여 증명되어 왔다. 우울증 환자의 가족에서 우울증 발생률은 2~3배 정도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유전적인 영향이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한 대뇌의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은 우리의 감정, 사고,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신경 전달 물질의 결핍이 우울증 발생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약물도 여기에 근거하여 개발되었다.


둘째, 심리적 원인으로는 정신 분석적 이론과 인지 행동 이론이 대표적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드(Freud)는 우울증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 인해 발생한다고 하였다. 또한 애착 이론을 발달시킨 보울비(Bowlby)는 불안한 애착 관계와 강박적인 자기 관계를 가진 사람이 우울증에 취약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기본 가정이나 배경은 서로 다르지만 우울증의 원인을 대인 관계의 충족 실패와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만족 실패로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지 행동 이론은 벡(A. Beck)이 처음 제시하고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발전되었는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여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셋째, 사회적 원인으로는 가족의 영향, 사회적 지지 체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은 이후 우울증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의 성적, 신체적 학대는 성인이 된 후 우울증 발생과 연관이 있다는 보고가 많으며, 부모의 음주, 정신 질환, 가정 폭력, 이혼, 사망 등의 경험과 우울증 사이에 연관이 발견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와 적절한 타인의 인정은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높여 우울증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우울증의 증상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외에도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우리가 기분이 좋을 때는 활발하고, 집중을 잘하여 일에 능률이 오르며, 잠을 푹 자고 입맛도 좋아진다. 그런데 우울증이 생기면 이와 반대의 증상이 나타난다. 우울증의 가장 핵심적인 증상은 부정적인 기분이다. 일반적으로 개운하지 않음, 기가 죽음, 슬픔, 쓸쓸함, 희망 없음,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 등을 말한다. 적지 않은 환자들이 슬픈 기분보다는 두통, 복통, 흉통 등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막상 신체적 검사를 해 보면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를 가면을 쓴 것처럼 신체 증상 뒤에 우울한 기분이 숨겨져 있다고 하여 ‘가면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집중력과 주의력 저하, 부정적 사고, 죄책감, 자살 사고 등도 빈번하다. 흔히 우울증 환자들은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의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희망을 포기하기 쉽다. 심한 경우 망상적인 상태에 이르기도 하는데 과거의 죄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는 피해망상, 자신이 재산을 모두 잃었다는 빈곤 망상, 암 등의 불치병에 걸렸다는 질병 망상 등이 있다.활동량이나 식욕, 체중, 수면의 변화는 의사와 보호자가 쉽게 발견할 수 있어 객관적인 평가가 용이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우울증 환자들은 불안, 초조, 안절부절못함을 보이거나 반대로 움직임이 느려지고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 하며 표정 변화가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우울증에서는 식욕 저하와 체중 감소가 흔하여 환자들은 입맛이 없어 억지로 먹어야 한다고 느끼고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면서 깊은 수면을 잘 이루지 못한다.


우울증 극복
우울증은 의사와 환자의 노력을 통하여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다. 다만 치료후에도 재발이 흔하고, 재발이 반복될수록 재발 간격이 짧아지며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조기 진단 및 치료 그리고 꾸준한 유지 치료를 통한 재발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울증 치료는 크게 생물학적 치료와 정신 치료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생물학적 치료에는 약물 치료와 비약물 치료가 있다. 우울증의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은 약물 치료와 더불어 정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다. 약물 치료는 환자가 보이는 증상, 약물의 부작용, 과거 약물 치료에 대한 반응, 처방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적합한 약제를 처방하게 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더라도 치료 효과는 투여 직후가 아닌 약 2주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투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된 뒤에도 바로 약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6개월에서 1년가량 지속해서 투여하여 재발을 방지해야만 한다.

 

비약물 치료로는 전기경련요법, 두개경유자기자극술, 심부뇌자극술, 미주신경자극술, 광치료 등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어느 정도 유용성과 안전성이 확립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약물 치료보다는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의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사용하기보다는 약물 치료만으로 충분한 호전을 보이지 않을 경우 고려하게 된다. 정신 치료는 아마도 일반인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치료일 것이다. 즉, 큰틀에서 의사와 환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치료해 나가는 면담 치료를 생각하면 된다. 세부적으로는 치료 대상과 기법에 따라 역동 정신 치료, 대인 관계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부부 치료, 가족 치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의사는 치료 목표와 환자의 선호도, 의사의 특정 기법에 대한 숙련도를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하게 된다.

 


우울증 예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우울증에 특화된 백신이 없다는 점이다. 독감이나 장티푸스처럼 한 번 맞고 잊어버려도 되는 예방 주사가 개발된다면 많은 환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 같다. 현재로서는 증상 호전 후에도 통원 치료를 받으며 6개월에서 1년간 꾸준히 약물을 투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우울증이 장기화되거나 두 번 이상 재발한 경우,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1~2년 이상의 장기간 유지 치료가 필요하다.우울증 환자 가족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환자는 가족의 태도와 이해 정도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족 역시 우울증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울증 악화 시기에는 환자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이때 환자를 비난하지 않고 질환의 한 증상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환자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가족은 환자의 수면, 식사량, 체중, 활동량의 변화를 잘 관찰하고 담당 의사에게 자세히 전달해 주는 것이 좋으며 이런 정보는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유지 치료 기간에는 환자에게 따뜻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강압적이지 않는 태도로 약물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은 우울증 환자의 신체 건강을 증진하고 우울한 기분을 개선해 주며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운동을 하느냐보다는 꾸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신체 건강, 선호도, 접근 가능성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운동을 선택하면 된다. 음식은 편식을 피하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면 된다.흔히 우울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오메가-3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효과에 대한 결론이 나온 상태가 아니므로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입맛이 떨어지고 식사량이 줄어드는 것은 우울증 재발의 신호일 수 있으므로 바로 담당 의사와 상의하도록 하자. 우울증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며 재발 방지가 치료의 핵심이 되는 질환이다.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사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간다면 우울증은 분명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병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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